기사입력: 2025년 5월 12일 / 작성자: 장실장 / 편집자: 장실장 / 출처: 크리스찬 데븐포트 • 오메가 플러스 & 월드 퍼블리싱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삶을 조망한 이 전기적 평전은 그가 권력과 예술, 인간 본성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졌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라는 두 예술 천재와의 교차점에서 드러나는 르네상스 피렌체의 긴장과 영광,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군주론"에 녹아든 현실주의 철학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에서 태어난 사상가
15세기 후반 피렌체는 르네상스 예술과 정치의 중심지였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격동기 속에서 정치 외교관이자 문필가로 활동하며 피렌체 공화국의 존속을 위해 일했다. 1504년,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가 동시에 시뇨리아 궁의 벽화를 맡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민병대 부활의 메시지를 담은 주제를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군사력의 자립과 공화국의 시민정신을 중시했으며, 이러한 가치관은 그의 정치적 실천과 저서에 투영되었다.
미켈란젤로와의 얕은 접점, 실용의 시선
미켈란젤로와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여러 해를 함께 보냈지만, 두 인물 간의 관계는 의외로 담백했다. 1506년 마키아벨리가 로마에 사절로 있을 때, 그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운송 업무를 간접적으로 도운 바 있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예술가의 위대함을 인식하되, 실용적 관점에서 그 가치를 판단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당시 피렌체에서는 천재조차도 행정적 체계 내에서 움직여야 했으며, 이는 르네상스 문예와 권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빈치의 '앙기아르 전투'는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유명한 화가 루벤스의 작품을 다시 그린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협업, 애국심을 담은 회화
1503년, 마키아벨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앙기아리 전투'를 의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피렌체 공화국의 군사적 승리를 시각화한 정치적 메시지였다. 이 전투는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시민군의 힘과 공화주의 이상을 담고 있었고, 이를 레오나르도라는 예술 천재의 손을 빌려 국가적 상징으로 남기고자 한 시도였다. 하지만 이 벽화는 기술적 문제로 미완성에 그쳤다.
예술보다 정치를 중시한 마키아벨리의 철학
마키아벨리는 예술에 대해 무관심한 철학자가 아니었지만, 그에게 예술은 정치와 윤리를 전하는 수단이었다. 그는 고대 조각상에 대해 경외감을 표하면서도, 위대한 정치가의 업적이 잊혀지는 현실을 비판했다. 이는 그가 공화국의 덕성과 군주의 실리를 동시에 중시하며, 현실 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예술보다 우위에 둔 철학자였음을 보여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체사레 마카리(Cesare Maccari) 가 그린 모나리자 그림 . 사진: 코르비스 역사/게티.
피렌체 예술과 정치의 접점에 선 전략가
마키아벨리의 정치 전략은 단지 이론이 아닌, 실제 피렌체의 권력 구조 속에서 경험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그는 예술의 힘을 경시하지 않되, 그것이 공화주의 이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고민했다. 피렌체가 외세의 위협 속에서 시민정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해야 할 길, 그리고 예술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정치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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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원본
마키아벨리_피렌체의 권력과 예술을 읽다
기사입력: 2025년 5월 12일 / 작성자: 장실장 / 편집자: 장실장 / 출처: 크리스찬 데븐포트 • 오메가 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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